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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일상다반사

필즈상 허준이 교수의 스티브 잡스가 부럽지 않은 서울대 축사

by 윈터곰 2022.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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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수학자 최초로 '필즈상 (Fileds Medal)'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가 29일 모교인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후배들을 위해 축사를 하였습니다. 각종 포탈에서는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는 준비에 정신 팔리질 않길'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필즈상 수상 당시 허준이 교수의 인터뷰를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너무 자극적인 타이틀만 부각되는 게 안타까워 관심을 가지고 연설문 전문을 찾아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꿈이 시인이 있던 허준이 교수답게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후배들에게 용기와 희망은 물론 어엿한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감 또한 생각하게 하는 정말 멋진 연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허준이 교수는 누구이고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는 어떤 멋진 연설을 하였는지 기록해보고자 합니다. 

¶ 허준이 교수는 누구인가? 

허준이 교수는 1983년 6월 9일 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두 분 모두 고려대와 서울대에서 교수를 역임하고 계시는 학자 집안 출신입니다. 부모님의 유학시절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2살 때 바로 한국으로 들어와 일반적인 한국 교육과정을 거쳤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수학 자체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한국식 입시 위주 교육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시인을 꿈꾸며 학교를 자퇴하고 책 읽기와 글쓰기에 전념한 적도 있다고 하네요. 문학을 가까이서 접하다 보니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입시학원에서 재수를 준비하여 서울대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에 입학 후, 잠시 방황의 시절도 있었으나 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서울대학교 수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게 됩니다. 이후 미국대학교 12곳에 박사과정을 지원했으나 모두 거절당하고 일리노이대학(UIUC)만 합격하여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학업에 임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리드 추측(Read's conjecture)'을 증명하고 이름만 들어도 혼란스러운 순면체적인 다양성과 대수적 순환의 양수성을 이용하여 로타 추측을 증명하는 등 굵직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이후로는 더욱 학업에 집중하여 수학계의 다양한 난제들을 증명하며 필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 허준이 교수는 '수포자'였나? 

처음 허준이 교수가 '수포자'로 알려지게 된 것은 자극적인 타이틀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신문사의 잘못된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2021년 12월 29일 조선일보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를 인터뷰하며 ['수포자'에서 '천재 수학자'로....]라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이 기사를 시작으로 많은 언론에서 허준이 교수가 수포자였다며 연이어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허순이 교수 본인이 부정확한 부분을 정정하고 싶다며 직접 언급하였습니다. 대학 입학 전 수학 성적이 뛰어나지 않았을 뿐이지 수포자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애초에 예체능 학과도 아니고 수포자인데 서울대 물리학과에 가는 게 말이 될까요? 허준이 교수 본인의 정정 요청이 있어서인지 해당 기사가 지금은 "인생도, 수학도 성급히 결론 내지 마세요"라는 제목으로 정정되었습니다. 꺼림칙한 부분은 있지만 허준이 교수의 인터뷰 부분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 시인을 꿈꾼 수학자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허준이 교수는 한 때 시인을 꿈꿨던 문학도였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시를 접하고 빠져들기 시작했으며 기형도 시인의 작품을 특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시인'과 '수학도'라는 단어를 나란히 나열하면 정말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허준이 교수는 수학과 시는 공통점이 아주 많다고 말합니다.

허준이 교수는 인터뷰에서 시와 수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시는 모순적인 표현 양식입니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언어로 소통하려는 시도니 까요. 그래서 시적 모호성이 생기죠. 수학은 땅으로 끌어내리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을 수와 논리로 표현해 공유하는 거고요. 둘 다 대상을 고도로 함축해 강력한 상징을 만들죠."

수학을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하는 게 가능한 건가요? 추상적인 개념을 고도로 함축해 만들어낸 강력한 상징이라니 표현이 너무 멋집니다. 허준이 교수 같은 분이 요즘 말하는 문·이과 통합의 융합형 인재 아닐까요?

▶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 

허준이 교수는 29일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학위수여식에 참석하여 후배들을 위해 축사를 전했습니다. 허준이 교수는 인사말과 함께 "학위수여식에 참석해야 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 중 하나나 성공한 사람의 교묘한 자기 자랑"이라며 유머 있게 축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대학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며 "똑똑하고 건강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친구들을 보며 나 같은 사람은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며 자신의 대학 생활을 "길 잃음의 연속"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때문에 어떻게 살까? 뭐하고 살아야 하나? 끊임없이 고민하고 매일 그 대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특히 제가 인상 깊었던 것은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는 후배들에게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이라며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를 바란다"라며 따뜻한 격려를 보낸 부분이었습니다. 

그 후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란다"라고 조언했습니다. 

¶ Stay Hungry, Stay Foolish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를 보며 그 옛날(?) 스탠퍼드 대학에서 "Stay Hungry, Stay Foolish"를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문장을 기억하시는 분 계실까요? 한 때, 전 세계적으로 굉장한 돌풍을 일으켰던 문장인데요. 애플의 창업자이자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아버지,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 대학의 졸업식 축사에서 했던 말입니다. 덤덤하게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많은 청년들에게  큰 감동은 물론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문장 자체도 굉장히 명료하고 바른 문장이어서 영어 교재용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저도 영어 공부 좀 한다던 시절에는 스터디그룹을 만들어서 친구들과 저 연설문을 한 줄 한 줄 함께 번역하며 공부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잠깐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러갔는데 잡스 역시 현재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방황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을 했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허준이 교수의 '병원의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 준비를 하지 말길'이라는 말 또한 너무 인생의 편안한 길만을 찾기보다는 끊임없이 나를 찾는 과정을 통해 언젠가의 나에게 당당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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